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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헤롱이의 마음공부 이야기
아기였으나 아기로 사랑과 보살핌을 받지 못한 어른은 비록 나이가 먹어도 마음이 자라지 못해 어른인 척 살아가는 아기가 됩니다. 내 안에 자라지 못한 아기 마음이 있어 삶이 힘든 분들, 영체마을에서 자라지 못한 내면의 아기를 성장시켜 보세요. 아래 링크에서 바로 연결됩니다.
아기였지만 아기가 될 수 없어 어른인 척 살아온 나
나는 아기였지만,
아기일 수 없었다.
재롱을 부리거나,
떼를 쓰거나,
뭘 사달라고 조르는
사랑받기 위한
아기의 언어들을
나는 몰랐다.
나는 아기였지만,
아기가 될 수 없었다.
사랑받고 싶어서,
버림받지 않으려고,
혼나지 않기 위해…
너무 일찍 철들었어.
그렇게 나는 ‘K장녀’가 되었다.
누구보다 먼저 이해하고,
먼저 참아내고,
늘 괜찮은 척, 강한 척하면서
조용히 울고 있었어
나는 착해야 했다.
뭐든 잘해야 했고,
양보해야 했다.
나는 아기가 아니라
‘언니’였으니까.


아빠는
“우리 공주, 우리 공주” 하시며
예뻐해 주셨지만,
기분이 좋지 않은 날에는
작은 실수 하나에도
“나가 죽어” 같은
아픈 말을
서슴 없이 내뱉으셨다.
나는 그 분노가
너무 무서웠다.
한 사람이 줄 수 있는
사랑과 공포가
이렇게 다를 수 있다는 게
어린 나에게는
너무나 버거운 일이었다.
그때는 몰랐지만,
아빠에게서 동시에 느껴지는
사랑과 두려움은
어린 내 마음을
조용히 얼어붙게 만들었다.


아빠가 무서웠던
어린 나는
곁에 다가갈 수 없었고,
늘 어색한 사이로 남았다.
성인이 되고 나서
나는
아빠와 가까워지려 노력했다.
팔짱도 끼고,
존댓말도 반말로 바꾸며
애써 다가갔다.
나는 그렇게,
미움 대신
사랑을 선택했고
아빠의 다정한 모습만
기억하고 싶었다.
그게
어린 내가 살아남기 위한
방식이었다.


어릴 적,
아빠의 사무실에서 걸려온
여직원의 전화에
'그 여직원은
나를 얼마나 불쌍하게 보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생각은 곧바로
나 자신을 불쌍하게 여기는
마음으로 옮겨갔고,
그 마음은
곧 수치심이 되어
나를 덮었다.
나는 그 순간부터,
외부의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며
감정을 눌러 담는 법을
익히기 시작했다.


아빠는
정이 많은 사람이었다.
아이들을 참 좋아하셨다.
하지만 아기였던
나를 돌볼 때는,
밤에 깨서 울면
소리를 질러
멈추게 했다고 한다.
기분 좋을 땐
세상에서
나를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었지만,
기분 나쁜 날엔
그 모든 화살이
엄마와 아이들에게 쏟아졌다.
직장에서도
분노를 조절하지 못해
여직원들이 오래 버티지 못했고,
결국 엄마가
아빠의 사무실에서
함께 일하게 되었다.
아빠의 감정을
감당할 수 있었던
유일한 사람은,
결국 우리 가족뿐이었다.
그 어린 시절
나는
말하지 못한
수많은 감정들을
꾹꾹 눌러 담고
살아야 했다.


🔖 관련 태그
#K장녀 #감정억압 #자기희생 #감정치유 #존재의눈물 #내면아이
👉 이 다음 이야기(살기 위해 참고, 살기 위해 사랑한 나 - 2)는
“내 안의 아픈 마음을 처음으로 안아준 날”에 대한 기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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